고려장은 정말 있었을까?

“옛날에는 나이 든 부모를 지게에 지고 산에 버렸대.” 어릴 때 한 번쯤 들어 본 이야기입니다. 이 풍습을 ‘고려장’이라 부르고, 그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려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장례 제도라고 여깁니다.

이 이야기는 옛날이야기 책과 교실, 1963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고려장〉을 거쳐 널리 퍼졌고, 요즘은 노부모를 돌보지 않는 일을 꼬집을 때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로도 쓰입니다. 그렇다면 고려 사람들은 정말 늙은 부모를 산에 버렸을까요? 기록을 차례로 짚어 보겠습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 지게를 다시 지고 온 아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이야기를 ‘고려장 설화’, 다른 이름으로 ‘기로(棄老)전설’이라고 정리하고, 크게 두 갈래로 나눕니다. 첫째는 ‘지게형’입니다. 일흔이 된 아버지를 아들이 지게에 태워 깊은 산에 두고 돌아서려는데, 따라온 어린 자식이 빈 지게를 챙깁니다. 왜 가져가느냐고 묻자 아이는 “나중에 아버지를 모실 때 쓰려고요”라고 답하고, 부끄러워진 아들은 노인을 다시 모시고 내려옵니다.

둘째는 ‘문제해결형’입니다. 노인을 버리는 것이 나라 법이던 시절, 한 아들이 어머니를 몰래 숨겨 모십니다. 그때 중국이 어려운 수수께끼를 보내옵니다. 똑같이 생긴 소 두 마리 가운데 어미를 가려내라, 나무토막의 위아래를 맞혀라, 코끼리 무게를 재라는 식입니다. 조정이 쩔쩔맬 때 숨어 지내던 노모가 답을 알려 주고, 임금은 노인의 지혜를 깨달아 악습을 없앴다는 결말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고려장이 사라진 까닭’을 설명하는 구조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왜 그럴듯하게 들릴까: 이야기는 바다 건너에서 왔다

이야기가 실감 나는 이유는 줄거리가 아주 오래되고 널리 퍼진 틀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백과사전 항목에 따르면 지게형은 중국 『효자전』에 실린 ‘원곡(原穀)’ 이야기와 거의 같고, 다른 점은 노인을 옮기는 도구가 지게가 아니라 수레라는 것 정도입니다. 문제해결형은 불교 경전 『잡보장경』 1권의 ‘기로국연’, 곧 늙은이를 버리는 나라 이야기와 닮았습니다. 원래는 천신이 왕에게 문제를 내는 이야기였는데, 우리 쪽 이야기에서는 중국이 고려에 문제를 내는 형태로 바뀌었고 늙은 아버지가 늙은 어머니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잡보장경』은 『고려대장경』에도 들어 있는 경전으로, 중국 연변대 이관복의 2011년 논문은 이 경전 속 이야기들이 한국과 중국 민담에 스며든 과정을 다룹니다. 백과사전은 비슷한 이야기가 인도와 중국은 물론 중동과 유럽에서도 발견된다고 덧붙입니다. 즉 ‘노인을 버리던 나라’ 이야기는 특정 나라의 역사 기록이라기보다, 여러 문화권이 공유한 교훈담에 가깝습니다. 그런 이야기에 ‘고려’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마치 고려 때 실제 제도였던 것처럼 들리게 된 셈입니다.

기록이 말하는 사실: 고려는 부모를 떠나는 것조차 벌했다

먼저 고려 시대 사료에는 노인을 산에 버리는 장례 제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고려사』 같은 관찬 기록 어디에도 ‘고려장’이라는 장례법이 정해져 있었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이 이야기를 역사 제도가 아니라 ‘전설’로 분류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백과사전에서 ‘고려장’을 찾으면 장례가 아닌, 일본에서 고려의 장(醬), 곧 된장류를 부르던 말이라는 항목이 따로 나옵니다.

오히려 고려의 법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고려사』 형법지 호혼조에는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자손이 호적을 따로 만들거나 재산을 나눠 가지면 도형(徒刑) 2년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부모를 두고 따로 나가 사는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만 백과사전은 이 조문이 이상을 담은 규정이어서 실제로 얼마나 지켜졌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입니다. 법이 그대로 시행되지 않았더라도, 국가가 무엇을 바람직하다고 여겼는지는 분명히 보여 줍니다. 이 밖에도 나라에서 효행이 뛰어난 사람과 노인에게 잔치를 베풀고 선물을 내렸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이야기가 언제부터 ‘기록’으로 남았는지도 단서가 됩니다. 백과사전이 이 설화의 원전으로 제시한 자료는 1926년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 1970~80년대의 지역 민담집과 『한국구비문학대계』입니다. 고려 당대가 아니라 근대 이후에 채록된 옛이야기라는 점에서, 이것을 고려의 실제 관습을 증언하는 자료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직 갈리는 부분

‘고려 때 제도로서의 고려장은 없었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이지만, 그 주변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래도 비슷한 일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시각입니다. 일부 칼럼은 노인을 버렸다는 뜻의 ‘노사암(老捨岩)’ 같은 지명과 거기 얽힌 전설, 다산 정약용 문집에 ‘고려장법’이라는 말이 보인다는 점, 고려장터로 불리는 옛 무덤들을 근거로 듭니다. 다만 정약용 문집의 해당 대목은 이번 글에서 원문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고, ‘고려장터’로 불리는 무덤도 실제로는 일반 고분인 경우가 많아 그 이름만으로 풍습을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선 초 실록의 한 구절을 ‘부모를 밖에 내다 버렸다’는 뜻으로 읽는 주장도 있지만, 집 바깥채에 모셨다는 뜻으로 보는 반론이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무덤을 도굴하려고 고려장이라는 말을 퍼뜨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인부들이 남의 무덤 파기를 꺼리자 “부모를 산 채로 묻은 불효자 무덤이니 파도 된다”고 설득했다는 내용인데,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이를 뒷받침하는 당시 문서가 제시된 경우는 찾기 어렵습니다. 2018년 『한국노년학연구』에 실린 돤샤오훙의 논문은 중국에서는 노인을 버리던 ‘기사요(寄死窯)’ 습속이 실증 연구로 확인됐지만 한국에서는 고려장의 존재를 부정하는 견해가 많다고 정리합니다. 결국 ‘고려 시대 국가 제도’는 근거가 없고,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 가난 때문에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와 ‘일제가 말을 퍼뜨렸는지’는 정설이 아닌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줄 정리와 자주 묻는 질문

고려장은 고려의 장례 제도가 아니라, 중국 『효자전』과 불경 『잡보장경』에 뿌리를 둔 교훈담에 ‘고려’라는 이름이 붙은 전설입니다.

Q. ‘고려장’이라는 말은 고려 시대 기록에 나오나요?

A. 『고려사』 등 고려 당대 관찬 기록에서 노인을 버리는 장례 제도로서의 고려장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담은 자료는 대부분 근대 이후 채록된 옛이야기입니다.

Q. 그럼 고려장 이야기는 어디서 왔나요?

A. 지게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의 원곡 이야기와, 노모가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는 『잡보장경』의 기로국연 이야기와 줄거리가 같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는 인도·중동·유럽에도 있습니다.

Q. 일본이 고려장을 지어냈다는 말은 사실인가요?

A. 자주 인용되지만 이를 직접 보여 주는 당시 문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불경·중국 설화에 뿌리가 있으므로, 일제 조작설은 정설이 아닌 주장으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참고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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